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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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동부권 통합청사 여수로.그동안 일이 참 많았습니다. 저의 사업에 큰 변화가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큰 변화가 연이어 있었습니다. 큰 변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짧은 기간에 벌 떼처럼 연이어 달려드는 변화들을 정리하느라 한 달여 동안 주변을 거의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슬금슬금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목련, 개나리, 벚꽃의 꽃망울이 날마다 펑펑 터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봄비도 내렸습니다. 이제 농부가 쟁기를 메고 들로 나가듯 저도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귀를 막고 사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살펴보았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전남 동부권 통합청사의 건립 문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남도는 여수 순천 광양 세 도시 중 한 도시에 동부권 통합청사를 짓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동부권 통합청사는 2022년 상반기에 준공을 목표로 하는데 이곳에는 동부지역본부 보건환경연구원 동부지원 도로관리사업소 동부지소 동물위생시험소 동부지소 전남 신용보증재단 그리고 도청 내 1개국을 추가로 수용해서 300여명에 가까운 인원을 수용한다고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제법 규모가 큰 청사가 전남 동부권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순천시는 작년부터 동부권 통합청사를 신대지구에 유치하기 위해 이미 발 빠르게 내부 준비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광양시는 광양읍 도청마을 인근에 통합청사를 유치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그에 비해 여수시는 내부적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통합청사의 여수 유치를 위해 아직 어떤 움직임도 없어 보입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지는 않았겠지만 동부권 통합청사를 여수의 관문인 율촌지역에 유치하기 위한 범시민적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여수 인구가 이제 곧 순천에 역전될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구 28만 명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이도 많습니다. 그동안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감소 문제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구호는 여럿 있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대책이 나온 적은 없습니다. 그 첫 작업을 동부권 통합청사 유치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에 일이 있어 경기도 의왕시를 갔는데, 빽빽한 빌딩숲 사이에서 큰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군포시와 안양시와 과천시와 의왕시가 서로 인접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수시 율촌면은 행정구역상 여수이지만 주민들의 생활근거지는 순천에 가까운 지역입니다. 장를 보러가도 순천으로 가고 학교도 순천으로 진학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이러한 율촌을 이대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발해서 활성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수산단에서 순천으로 출퇴근하는 근로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수에 직장을 두고 순천에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인원만 여수에 붙잡아 두었어도 여수의 인구감소 문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통합청사를 율촌에 유치해서 이곳을 신대지구처럼 신도시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율촌산단의 근로자까지 유입할 수 있어서 여수의 인구정책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수와 순천은 서로 경쟁도시가 아니라 서로 보완의 도시입니다. 여수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순천이 갖고 있고 순천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여수가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거리감을 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접 지역을 함께 개발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남도는 동부권 통합청사의 입지를 올해 6월까지 결정한다고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여수의 국회의원 세 분과 여수시와 지역 내 모든 정치인과 시민들이 지혜를 모아서 동부권 통합청사의 율촌 유치를 적극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당위성과 청사진을 앞세워 총력전을 펼친다면 통합청사의 율촌 유치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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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왜 하는가?작년에 정치를 시작하면서 나는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떠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왜 그러는지 현장에서 느낀 생각을 가감 없이 전달해서 시민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겠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질문을 하지 않는 사회에 가까웠다. 정답을 정해놓고 따르기만을 강요하는 사회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질문을 해야 하는 시대다. 그것은 왜 그러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 그 말에 수백 명의 생떼 같은 어린 아이들이 죽음을 당했던 것처럼 그동안 질문을 하지 않고 입을 틀어막던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세상이 이렇게 틀어졌다고 본다. 우리가 그것을 묵인했건 입막음을 당했건 우리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물어야 한다. 그래서 그동안 다양한 행사나 강연회를 개최하면서 뭐든지 묻고 답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묻고 답하는데 있어 제한이 없어야 투명한 정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지역에 “아! 이러한 것도 가능하구나.”하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 안에 들어와 보니 이런저런 제한이 많다. 더구나 민주당 부대변인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라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번 글을 쓰면 16만 명의 독자에게 이메일이 나간다. 그리고 언론에 칼럼을 쓰면 수만 명의 독자가 글을 읽는다. 그래서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 이런저런 속 얘기도 하고 싶고, 그동안 진행된 저간의 사정도 얘기하고 싶다. 많은 시민들이 내게 묻는다. 더불어민주당 여수을지역위원장 최종 명단에 왜 내 이름이 빠졌느냐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민주당에 입당한지 몇 개월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에 기여한 바가 적다. 그래서 내 생각에 고생을 더 시키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이제 막 입당을 하자마자 지역위원장을 꿰찬다면 누가 정치를 못할까. 하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으니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당에 기여한 바가 적다면 더 열심히 노력해서 당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다가올 대선 때도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다. 산에 올라가 봐야 다리의 힘을 알고 물속에 들어가 봐야 자신의 키가 크고 작음을 안다. 정치는 어차피 불공평한 면이 없지 않다. 정치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어느 정도는 불공평하다. 그 불공평에 궁시렁 대면 그 사람은 정치할 자격이 없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나는 날마다 이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진다. 내가 가진 선한 영향력으로 지역사회와 세상을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는 선한 영향력은 따뜻하고, 정의롭고, 공정하고, 책임지는 영향력이다. 지난 57년 동안 나는 여수에 살면서 그리 살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얘기한다. “이제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지금같이 해서는 정치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유권자의 생각이 바뀌지 않고 정치인을 선택하는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틀이 바뀌지 않는 한 정치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바꾸고 싶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진 선한 영향력을 통해서 지역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고 싶다.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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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8, 끝나지 않은 아픔.중학생 때였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와 집으로 가다가 동네 형을 만났다. 함께 집으로 향하던 그 형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접어들자 얼굴 표정이 돌변하면서 우리에게 가진 돈을 모두 내놓으라고 했다. 자신의 호주머니에 있는 날카로운 면도칼을 보여주면서. 불행하게 그날 아침에 나는 우리 어머니에게서 정말 어렵게 받은 돈이 있었고 그 날 그 돈을 몽땅 빼앗겼다. 그 돈이 너무 아까워서 사먹고 싶었던 과자 하나 사먹지 못하고 만지작거리고만 있던 그 돈을 그 형에게 모두 뺏긴 것이다. 고등학교 때 교련시간이었다. 그 당시 교련시간의 대부분은 군대식 제식훈련과 분열연습을 하였다. 호루라기 소리에 왼발을 맞추고 “좌향 앞으로 갓!”, “우향 앞으로 갓!”하면 손과 발을 척척 올리면서 절도 있게 걷는 연습이었다. 줄을 지어 걸으면서 앞의 앞사람 머리가 보이지 않도록 정확하게 맞춰서 걸어야 하는 연습이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연습을 하다 보니 싫증이 났다. 그래서 옆에 있는 친구와 잠깐 몇 마디 말을 주고받으며 걸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교련선생님에게 딱 걸렸다. “너희 둘! 앞으로 나와!”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앞으로 나갔다. 그 순간 내 뺨에서 “철석!”하는 소리가 났다. 얼마나 세게 맞았던지 나는 몇 미터 밖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내 코에서는 코피가 흘렀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온 몸에 분노를 느꼈다. 군 생활 때였다. 유독 후임들을 괴롭히던 선임이 있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좋아서 괴롭히고 기분이 나쁠 때는 나빠서 괴롭혔다. 그 당시는 군대 폭력이 일반화되던 시절이라 그 선임의 횡포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안 마주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피해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초소에서 그 선임과 단둘이 보초를 서게 되었다. 보초를 서는 두 시간 동안 얼마나 시달릴까 생각하니 걱정부터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별 이상한 암기사항을 다 물어보면서 모르면 모른다고 구타를 했다. 마지막에는 고향이 전라도라고 맞았다. 그날 선임에게 엉덩이에 피멍이 들 정도로 맞았다.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30년이 훨씬 지난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 어딘가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그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꼭 그래야만 했느냐고. 나중에 혹시 미안한 마음이 들진 않았느냐고. 아니, 그러한 사실 자체를 기억이나 하고 있느냐고. 그 기억 중간에 5.18 민주항쟁이 있다. 같은 국민을 잔인하게 총칼로 죽였던 그 사람들에게 나는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꼭 그래야만 했느냐고. 지금이라도 희생자와 유가족과 평생 트라우마를 겪고 사는 광주시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진 않느냐고. 저들의 논리라면 600명의 북한 군인들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광주에 나타나 유혈사태를 저지른 뒤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말을 하고, 또 그렇게 말하는 것에 동조하고도 국민과 5.18 유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은 들진 않느냐고. 철제 곤봉으로 시민의 머리를 내리치고 선혈을 흘리며 쓰러진 학생과 시민을 군화발로 짓밟고 총검으로 찌르고도 마음이 괜찮았냐고. 그 어린 학생들이 북한군처럼 보이더냐고. 그렇게 학살을 하고도 당이 다르고 이념이 다르다고 39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항쟁을 폄훼하고 싶냐고. 자유한국당은 그 엉터리 같은 모순과 망언을 끊임없이 정치적 인식의 토대로 삼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씁쓸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서 5.18 민주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와 행동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선한 행동이 많아지지 않으면 나쁜 행동이 그 자리를 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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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만들기.중소기업 9988’이란 말이 있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 숫자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근로자수가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88%를 차지한다는 의미다. 우리 주변에 보면 종업원 몇 명을 데리고 사업을 꾸려나가는 영세 사업자들이 꽤 많다. 그 사업자가 중소기업을 운영하든 자영업을 하고 있든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가기는 마찬가지다. 날마다 출퇴근하는 길에 몇 년 사이에 간판이 세 번이나 바뀐 상가가 있다. 내 기억에 처음에는 그곳에 자장면집이 있었다. 그런데 3년 전에 문을 닫고 치킨집이 들어왔다가 다시 문을 닫고 한참 동안 빈 가게로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호프집이 들어온다며 실내인테리어 작업이 한창이다. 그것을 보면서 무심코 ‘가게가 또 바뀌네?’ 생각했다. 그러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이지만 간판을 올리고 내리는 문제는 당사자에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식물의 3분의1은 곤충의 수분(受粉)활동으로 열매를 맺는다. 그 가운데 80%는 꿀벌을 통해 수분활동이 이뤄진다. 특히 딸기, 호박, 사과, 오이 등 사람이 먹는 작물의 90%는 꿀벌을 통해서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지구상에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도 4년 내에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꿀벌처럼 그 존재는 미약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를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라고 하면, 그것이 바로 이 땅에 있는 중소기업인과 자영업자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경제가 대기업 위주인 오늘의 현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가경제를 지탱해 왔고 오늘날 우리나라를 경제대국으로 이끌어 온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대기업이 이 땅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대단했다.하지만 이제는 대기업에 쏠렸던 이 시각을 조금씩 중소기업 쪽으로 돌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삼성의 반도체 국면이 어떻고 현대중공업의 조선업이 어떻고 하는 것은 날마다 뉴스를 통해 알 수가 있지만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을 심도 있게 다루는 뉴스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애국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많은 직원들을 고용해서 그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 고용의 88%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비중은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1조원의 매출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것을 한 회사가 모두 독차지하면 사장은 1명이고 고용은 많아야 1000명 정도 될 것이다. 그런데 100억짜리 회사가 100개 있다면 사장은 100명이 되고 고용은 수천 명도 넘을 것이다. 그리고 10억짜리 매출의 중소기업이 1,000개 있다고 가정하면 사장은 천명이고 고용은 만 명도 넘을 것이다. 경제의 효율성만 따진다면 당연히 1개 회사가 1조의 매출을 독차지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고용의 관점에서 보면 100개의 중소기업이, 그리고 1,000개의 중소기업이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하게 공존하며 1조의 매출을 달성하는 것이 국가발전에 훨씬 더 기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정부의 잇따른 지원효과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세밀한 정책을 펼쳐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가 중소기업인들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분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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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의무.살면서 어느 해라고 중요하지 않은 해가 있었을까 만은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더 중요한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념간, 정파간 다툼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계층간 갈등도 더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거기에 올해는 국회의원을 뽑는 21대 총선도 목전에 두고 있다. 선거에 누가 나오든, 하나같이 자신이 서민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지역에 기여한 인물이라고 한껏 목청을 돋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지금까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보면 그 사람이 앞으로 살아갈 삶이 보인다는 것을. 그런데 사람들은 선거철만 되면 착각을 한다. 지금까지 없던 선함이 갑자기 생겨날 것이라 생각하고, 지금까지 없던 지역 사랑이 갑자기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우리는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가끔 사회는 훌륭한 사람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악한 사람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회가 악해져 있다면 악한 인물에 대해 공감이 클 것이고, 사회가 건강하다면 그러한 인물에 공감이 클 것이다. 그래서 결국 국가도, 도시도 그에 걸맞은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여기저기에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나는 강한 리더십의 부재가 아닌가 싶다.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할 줄 알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비록 일부에게 욕을 얻어먹더라도 강하게 추진하는 리더십 말이다. 엊그제 어느 분을 만났더니 역대 대통령 중에서 집권 3~4년차에 가장 지지율이 높았던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고 했다. 깜짝 놀라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재임기간 동안 일을 안 했기 때문이란다.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모든 사람들을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다. 70대 30이냐, 80대 20이냐, 90대 10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반대하는 측은 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을 하는 지도자는 반대를 피할 수 없고 욕먹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다. 제도를 개혁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유익한 일이지만 기득권층에는 대부분 가혹한 일이다. 그 기득권층이란 현재의 불합리함에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혁과 변화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혁이 어렵고 중도에 포기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수많은 개혁이 중도에 포기되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도자의 진정한 평가는 당장에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5년 후에, 10년 후에 그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지도자가 욕먹는 것이 두려우면 개혁이나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아무 결정도 안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을 안 하면 침묵하는 약자는 손해를 보면서 살아야 하고 소수의 강자에 의해 사회는 계속해서 끌려가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결정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지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말’이다. 특히 선출직의 지도자들이 명심할 일이 있다. 임기를 마르고 닳도록 하겠다는 욕심보다 임기는 한 번만 하겠다는 각오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개혁을 할 수가 있고 불합리한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할 결정임에도 반대가 두려워서 혹은 반대세력을 만들까 두려워서 결정을 못하는 것은 지도자가 할 행동이 아니다. 자신의 결정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나서야 한다. 그래야 도시가 도시다워지고 국가가 국가다워지는 것이다. 그러한 다음에 지도자는 정성스럽게, 그리고 치열하게 일해야 한다. 국민은 일 잘하는 지도자를 원하기도 하지만 정성스럽게 일하는 지도자, 애가 터지게 일하는 지도자도 원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말은 이 땅의 모든 지도자에게 공통적으로 유효한 말이다. 선생님이 고생하면 학생들이 행복하고 지도자가 고생하면 국민과 시민이 행복하다. 반대로, 지도자가 편하고 쉬운 것만 찾으면 국민과 시민이 그만큼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이 땅의 모든 지도자들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