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숙 여수샘뿔인문학 연구소 소장- 시인
일송정 푸른 솔은 홀로 늙어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 소리 들릴 때
뜻 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 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A)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깊이 새겨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B)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선구자>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 원제:<용정의 노래>
일제의 폭압이 극에 달했던 1933년 이 노래가 만들어졌다 한다.
시인 윤동주가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한 다음 해. 필자가 줄그어 표시한 부분은 작사를 했던
윤해영의 노래 구절이 아니라 용정에 발 디뎌 본 적 없었던 작곡자 조두남이 임의로 개사를 했다고 한다.
원래의 표현은 ‘눈물 젖은 보따리’(A)와 ‘흘러 흘러온 신세’(B)라고 한다. 어쨌든 그 시절의 용정과 만주, 우리 민족의 산천은 일제의 침탈에 먹을 것 입을 것 다 빼앗겨 눈물 젖은 보따리의 신세였던 것이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그늘져있는데, 이 굴곡진 심리적 박탈감이 2023년 8월, 이 날 이 시각까지 이르렀다는 게 통탄할 뿐이다.
저 거친 꿈의 선구자들은 무덤에서조차 벌떡 일어나 구천을 헤맬 것만 같다. 가슴 깊이 사죄하는 아침이다.
여기에서, 시 읽기의 한 지혜는 역사의 사실과 원저의 상관관계를 확인하며 읽어나갈 것, 그리하여 창작의 진실성을 확보한 후의 시어 선택의 적절한 과정을 습작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시적 상상력이 완성의 과정에서 중요하다 하더라도 ‘역사적 진실’에 있어서의 상상은 좀 더 비판적인 시각을 담보해야 하며 그 비판에 쓰이는 언어선택의 적절성도 사실이 담보된 후에라야 적확한 표현의 미를 구사할 수 있을 터!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
나를 부르지 마오.
-<무서운 시간>/윤동주/
엄연한 시절, 청춘의 시절, 윤동주의 시는 어둠 속 별이다. 사위는 깜깜 밤이나 시어가 가리키는 절실함이야말로 시에서의 가장 빛나는 절절함이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는 용기와 함께 언어를 뱉는 순간에도 무서웠고 부끄러웠다. 그것은 ‘ 몸 둘 하늘’이 없었던 탓이다.
그는 더럽혀진 조국의 하늘 아래 찢겨진 민족의 영혼 곁에서 늘 시를 썼으나, 한 마디 결연하고 빛나는 시어를 직조할 수 없는 것처럼 표현했다.
모든 시가 너무 쉽게 써져-쉽게 씌어진 시/윤동주- 부끄럽다 하였다. 그의 부끄러움은 시 ‘서시’에 더욱 명징하게 표현되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어진 시>/윤동주
윤동주의 마지막 시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온갖 생체실험의 혹독한 고통으로 시달리다가 29세 된 1945년 사망하고 말았던 윤동주,
역사의 오류요 인류 잔혹한 전쟁놀음의 오류로 희생된 윤동주, 그의 영혼이 빚은 시들은 그러나 맑고 아름답다 아니 처절하다.
또한 결연하며 치열하다. 우리의 시 정신이 탁류에 휩쓸릴 때, 헹궈야 할 때, 윤동주의 혼이 담긴 시야말로 읽고 또 사랑할 그런 시의 원류가 될 것이다.
시창작이란, 역사의 오류를 톺아가는 작업 아닐까 싶은 것이다. 우리에게 질펀한 그 오류의 시기, 지금도 시의 본령은 우리 민족이 살았던 땅과 저 먼 바다를 관통하고 있다. 역사와 역사의 인물을 통해 시 창작을 실현할 작금의 과제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