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수필가
향일암의 진산 금오산(金鰲山)으로 해쑥을 캐러 왔습니다. 청정! 그야말로 무공해 지역입니다.
와서 보니 쑥뿐만이 아니라 고사리, 왕고들빼기 등이 지천입니다.
몇 년 전부터 이맘때면 봄나물을 캐러 갔었는데, 올해도 변함없이 금오산을 찾았습니다.
아내만이 알고 있는 명당자리는 햇나물들이 군락을 이룬 채로 우리를 반겨 줍니다.
올해는 특별히 친구 부부를 은밀히(?) 초대했습니다. 친구 부인이 대단한 요리 솜씨를 가진 분이라 동행을 권유했더니 흔쾌히 승낙한 것입니다.
오늘은 친구 부인께서 정성껏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두 가족이 같이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순천의 명주 ‘나누우리’ 막걸리를 반주로 곁들어 마셨더니 입이 알아서 절로 흥을 돋웁니다.
두 분 여성은 막 돋아나는 해쑥을 캐고, 친구와 나는 고사리와 왕고들빼기를 끊거나 캡니다.
나는 기분이 한껏 좋아져서 큰소리로 맘껏 소리 지를 수 있는 그 느낌과 분위기에 매료되어 호남의 비타민이며 호남인들의 영원한 얼과 흥이 버무리 되어 있는 그 유명한 판소리 단가인 “호남가”를 토해냅니다.
내가 최고로 기분이 좋았을 땐 어김없이 입에서 거의 무방비의 상황으로 튀어나오는 흥얼거림입니다.
함평 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하고
제주어선 빌려 타고
해남으로 건너 갈 제
흥양의 돋은 해는
보성에 비쳐있고
고산의 아침 안개
영암을 둘러있다.
태인 하신 우리 성군
예악을 장흥 하니
삼태육경이 순천 심이요
방백 수령은 진안군이라.
앞에는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너른 바다! 뒤에는 그 유명한 금거북이라는 뜻의 금오산! 배산임수의 전형을 보여주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잔잔한 바다 위로 하얀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통통배들, 녹색 수액을 가득 머금은 여린 나무 끝에서 전해오는 새싹들의 움틈의 현장, 크고 작은 온갖 섬들이 금거북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도열 해 있는 풍경이 눈에 가득 들어옵니다.
정말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옛글과 함께 상큼한 시상이 떠오릅니다.
산과 바다, 그리고 섬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면서 물빛, 산빛, 하늘빛이 고즈넉하게 물들고 있는 남녘의 해안 풍경은 포근하고 정겹고 안온합니다.
아! 오늘은 그야말로 눈과 입, 그리고 코와 귀 등 신체의 모든 구멍이 활짝 열리어서 건강한 기쁨을 호흡하니 온종일 호사를 누리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이 있고, 좋은 음식이 있고, 좋은 풍광이 있으니 이 또한 흥얼거리는 것이 제격이 아니겠습니까? 저의 졸 시조 「향일암」입니다.
향일암
향일암 가는 길은 내내 꿈길 이어라
좌우의 온갖 바윈 거북 등 무늬여라
거무산 직벽 바위는 영험한 기도처라
관음전 연리근엔 손 맞잡은 젊은이라
두 손을 맞잡으니 사랑의 노래여라
댕그렁 풍경소리는 그들만의 축복이라
해넘이 노을 속엔 만선의 통통배라
시 속에 그림 있고 그림 속에 시 있어라
고사리 여린 잎맥엔 봄빛 설핏 얹혔어라.
註 : 거무산은 금오산의 옛 이름. 산에 산림이 울창하여 검게 보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