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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정 부부 상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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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정 부부 상경기

소월정 부부 상경기

김상훈.jpg

김상훈 (수필가) 

 

 

 

"오메, 서울은 여름에 가도 춥다든디 어쩐다냐?"

 

 

이 말은 우리 어머니께서 생존해 계셨을 때 서울이라는 곳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로 가끔 사용하셨던 말씀입니다.

 

 

흔히 알려진 대로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각박한 서울의 인심을 가장 울 엄마식으로 표현했던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울깍쟁이라고 사뭇 자기 고향이 더 낫다고 합리화 시키던 시절에 울 엄마의 자존감과 해학과 풍자가 버무려진 서울이라는 곳이 편하지만은 않다는 표현 방식의 하나입니다.

 

 

이렇듯 여름에 가도 춥다는 서울을 한겨울인 12월에 저희 부부는 다녀왔습니다.

 

 

참고로 전날의 엄청난 바람과 다음날의 기습 한파는 올해 들어 최고 추위인 영하 9, 체감온도는 15도라고 방송에서는 호들갑을 떨고 있었습니다.

 

 

서울 여행의 목적은 백내장 수술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더불어 조절성 인공장치를 삽입하여 근거리, 원거리를 훤히 볼 수 있게 하는 눈 수술을 받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습니다.

 

 

친구 부부가 몇 년 전 이 수술을 했는데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고 안경을 쓰는 불편함에서 해방되어 날아갈 것 같다고 해서 그 병원을 소개받은 것입니다.

 

 

나의 심각한 눈 상태와 아내가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글을 읽고 쓰는 불편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서울의 유명 안과병원을 찾은 것입니다.

 

 

예약 시간은 오후 2, 3시간 반 이상의 온갖 검사를 받은 뒤 원장님의 감동적인 기도와 함께 왼쪽 눈부터 수술하였습니다.

 

 

수술 시간은 약 15분 정도로 수술 후 우리 부부는 네 개의 눈이 졸지에 두 개로 줄어드는 외눈박이로 깜짝 변신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왼쪽 눈에 안대를 하나씩 붙였는데 그 불편함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우선 걸을 때 눈앞의 원근과 바닥의 높낮이를 전혀 가늠할 수가 없고, 한 눈으로 보는 낯선 서울의 휘황찬란한 거리는 우리 부부에겐 생전 처음 보는 괴물로 보였습니다.

 

 

주변의 호텔은 비싸니까 신논현역 근처 교보타워 반대편에 있는 ‘N 호텔을 소개받아 병원 문을 나설 때의 시각은 밤 6시가 막 지나고 있었습니다.

 

 

친절한 병원 여직원이 택시를 이용하면 곧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밖으로 나왔을 때 곧바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장면이 한쪽 눈을 통해 다가왔습니다.

 

 

그 모질게 추운 바람과 수많은 인파와 끝없이 이어지는 눈부심이 심한 네온의 불빛과 자동차 경적은 1분도 안 되어 우리 부부를 완전한 이방인, 아니 예외 없는 전쟁고아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퇴근 시간과 맞물린 서울의 심장부 압구정역 3번 출구 앞에서 우리는 버려진 노인처럼 절망의 절벽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한쪽 눈으로 아내가 옆에 있는지(손을 잡고 걷기는 불가능했습니다.)를 열심히 확인하며 떠밀리듯이 움직이면서 질주하는 택시를 잡으려다가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택시를 잡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내가 무슨 수로 저 수많은 인파 속에서 택시를 잡을 수 있단 말인가?

 

 

눈 좀 고쳐서 편히 살려다가 그냥 거리에서 객사할 수도 있겠다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꽉 막힌 고정관념에다 그것에 몰입하는 집요함, 반드시 택시를 이용하라는 병원 여직원의 말에 함몰되어 다른 경우는 손톱만큼도 고려해 보지도 못한 편협함이 우리 부부의 고난을 가중하고 있었습니다.

 

 

‘N 호텔을 소개하고 있는 유인물을 보이며 도움을 청했을 때 대부분의 서울시민은 무심하고 귀찮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렇게 헤매기를 30여 분, 마침내 어느 친절한 여성 한 분이 여기는 택시 잡기가 불가능한 지역이니 1442(?)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지나 신논현역에서 내리면 교보타워 반대편에 우리가 찾는 호텔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살길을 찾았습니다.

 

 

, 나의 구세주여! 나의 마돈나여!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쟁 못지않은 역경과 고난 끝에 예약한 호텔에 도착했을 때의 시각은 720분이었습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았을 때 우리는 그 추운 길바닥에서 외눈박이로 1시간 이상을 헤맸던 것입니다.

 

 

거리상으로는 겨우 2.5km밖에 되지 않은 머지않은 길을 말입니다.

 

 

호텔에 와서 정리해 보니까 택시 잡기는 아예 불가능했고 전철과 버스를 이용할 수가 있었는데, 그놈의 택시만 잡으려고 했으니 하여튼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촌놈은 어디를 가도 촌놈이라는 자각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너무 지쳐서 넋이 나간 듯 별로 말이 없습니다.

 

 

호텔에 들어왔다 해도 얼굴을 씻지도 못하고 안대 또한 떼지도 못한 채 테가 굵은 수면용 안경을 쓰고 자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오른쪽 눈을 마저 수술하려고 호텔을 나와 병원으로 갈 때는 많은 택시가 머리를 조아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호사도 누렸습니다.

 

 

제기랄, 이렇게 평온한 거리가 어젠 그렇게 삭막하고 비열한 생과 사의 현장으로 군림했었단 말인가? 라는 생각에 기가 막혔습니다.

 

 

영하 9도의 추위쯤은 전날의 고행에 비하면 깜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왼쪽 눈과 똑같은 검사를 한 다음 오른쪽 눈을 수술하였습니다.

 

 

끝난 시각은 오후 1시쯤, 우린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귀가하였습니다. 12일의 서울행은 눈이 밝아진 대가를 혹독히 치른 하나의 사건이었고, 한바탕의 꿈을 꾼 듯 야릇한 기분이었습니다.

 

 

하루에 네 번씩 소염제, 항생제 등 세 개의 점안액을 넣고 눈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며 특히 밤에는 모든 빛이 달무리처럼 둥글게 보여 밤 운전은 절대 하지 않아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뭔가 하나의 절실함을 얻기 위해서는 꼭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교훈을 온몸으로 실감한 종횡무진 우리 부부의 상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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