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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智惠so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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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기반 사회’ 정보 통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지식의 가치가 사회의 모든 정치 경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가 되었다. 지식과 정보의 가치는 무한하다. 미래사회의 원천이 지식과 정보에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지식을 주입하기에 무단히 노력하여야 한다. 야간 자율학습을 통해서라도 학생들에게 반복된 활동을 강요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암기력을 향상 시키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 될 것이다.


지식의 주입 능력이 부족한 아이에게는 기술적이든 의학적이든 반복학습이나 치료를 통해서라도 지식의 양을 늘리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지식을 목적으로 한 활동이 교육과 사회 경제적 가치창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식은 내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박식한 친구는 성적을 테스트 하는 학교에서 능력자일 수 있다.


그 이유는 빠른 시간에 자신이 습득하여 암기한 정보를 빨리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학생이 모든 면에서 훌륭하지 않아 보인다. 지식을 활용하여 논리적으로 연산하고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여 내면화하고 그것을 상황과 필요에 맞게 재가공할 줄 아는 학생 앞에서는 박식은 그저 단순한 기능일 뿐이다.


지식은 세상의 이치를 표면화 한 내용일 뿐이다. 그것을 가공하고 연산하여 활력을 불어 넣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


이분법에 의존해 그 차이를 나누었을 뿐 사실상 지식과 지혜는 인간이 세상을 재구성한 과정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메타인지를 상호 관계에서 찾기 시작하면서 한 단계 그리고 그보다 더 높은 단계의 수준의 지식과 경험을 누적시킨 결과이다.


내가 틀린 것을 상대방이 지적하고 또한 상대방의 논리적 가치의 모순을 또 다시 찾아내는 무한 반복의 활동을 시작한 인간이 누적시킨 결과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다.


그 지식의 문제와 한계를 지적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지식은 단순한 현상으로만 정체될 뿐이다.


이는 지식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필요한 가치나 상상속의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인간끼리 상호 협력하면서 기존의 지식에 논리적 한계와 문제를 극복하는 논리적인 노력 즉 지혜가 전제되어야 미래가 있다는 말이다.


단순한 지식의 암기는 우리 인간의 발전에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개발하고 있는 인공 지능이 단순한 지식을 데이터로 하여 간단한 창의적인 일까지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최근 특정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 말을 결어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은 약한 지능의 인공을 뛰어넘어 영화처럼 어떤 결과를 수행하기 위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강한 인공지능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인간의 교육적 목적을 지식이라는 제한적인 내용을 얻는 것에 한정 짓기는 좀 그렇다. 미래 교육도 이제는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회적 지표를 양산하는 기관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 지식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보다는 지식과 단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호 관계 속에서 소통하고 협력하는 일들에 너무도 소홀하다.


개인의 지적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익숙해서 서로 협력하고 협동하는 관계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대화가 없는 학교. 질문이 없는 학교. 그것은 사회적 자폐를 양산하는 곳일 수 있다.


병적인 증상만 자폐라고 하지 않는다. 인간관계의 단절을 경험하는 많은 친구들을 보면서 자폐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사회적 병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는 가족에서도 사회에서도 여려 자폐적 현상들을 목격한다. 가족으로 있으면서 대화 한번 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여 가족관계에서 얻을 중요한 교감을 상실하고 있다.


사회에서는 자신의 주장만을 이야기 하고 합의점 없이 비논리적 사고에 휩싸여 혼잣말을 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자폐증을 개인적 병으로만 보지 않는다. 자폐증은 사회적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폐증과 사회적 현상을 비교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폐증(Autism)이란 다른 사람과 상호관 계가 형성되지 않고 정서적 유대감도 일어나지 않는 아동기 증후군이다.


자신의 세계에 갇힌 상태‘라고 하여 붙여진 발달 장애이다. 증상은 상호 관계의 장애와, 의사소통 및 언어장애, 그리고 행동 장애가 특징이란다.


일부 자폐증상을 보이는 사람들 중에 특별한 천재성을 가진 자폐증을 ’서번트 신드롬‘이라고 한다.


자폐증 환자 10명중 1명은 천재적인 역량이 있다고 한다. 스테판 원샤이어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영국의 예술가이다.


그는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그가 본 사물의 실체를 천재적 기억력에 의존해 정밀하게 그림으로 표현한다. 이런 서번트 증후군은 좁은 분야에서 나타나는데 모두 기억에 의존하는 것으로 절대음감, 암산, 그림 등이 천재성으로 나타난다. 


이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능력자의 개인적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여도 그 능력이 사회에서 아무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테판 원샤이어를 사회에 선보이게 한 조력자가 없다면 그의 존재도, 그의 천재성도 무의미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천재성을 가진 수학적 능력을 어디다 쓰고 활용할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소통의 부재는 결국 무의미한 능역일 뿐이라는 것이다.


천재적인 능력도 사회 구성원과 소통하고 협력해야 사회적 가치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결국 지식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세상의 경험의 결과를 내용으로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을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인간과 인간이 서로 협력하여 현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와 희망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지혜이다. 미래 사회에서 독보적 능력을 가진 인간은 없다. 있어도 무의미하다. 모든 기술과 과학 그리고 의학들은 개인적 능력으로 만들어진 영역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은 모두 데이터로 저장되어 있다. 이 데이터의 가치를 상상력으로 재개발하고 그 상상력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인간끼리의 협력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교육의 근간은 협력이다. 그리고 소통이다. 교육에서 지혜로운 인간을 만드는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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