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하는 아이는 행복한 아이다.
무엇에 즐거워하고 그 즐거움에 흠뻑 젖어 정신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이는 행복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함박웃음 지으며 눈을 마주치며 5분 이상 대화를 한다면 그 아이는 어디서든 존중받고 소중한 친구로 남을 아이이다.
이런 아이와 살고 있는 부모라면 그 부모도 그 아이와 똑 같은 행복 속에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항상 즐거워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또는 행복해야 한다는 숙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래도 즐겁고 행복한 것에 가치를 둔다면, 그리고 즐겁고 행복해야 할 기준을 일상의 작은 것들에서 찾을 수 있다면 하루하루 정말 예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솔직하고 명랑한 아이는 목소리부터 다르다. 그리고 어떤 질문에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거르지 않고 말한다.
가끔 뜬금없고 부적절한 표현이 섞여있더라도 눈을 깜빡이며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말한다.
그러한 태도 때문에 자기와 생각이 다른 친구를 만나면 항상 궁금한 것이 배가 되고 개방적인 사고로 친구들의 의견을 경청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장이 뚜렷하고 가치가 분명한 아이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순응하며 적응한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성적과 상관없이 모두 제각각이고 살아가는 모습 또한 모두가 다르다.
다르기에 그 모든 것을 존중하려 애쓴다. 하지만 존중하려 애써도 마음 아파 외면하게 되는 아이가 있다.
다른 아이들의 권리를 쉽게 생각 하거나 다른 아이들의 말에 비난의 말로 평가하여 분위기를 흐리는 아이들이 그렇다.
긍정의 표현보다는 부정적 표현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이 그렇다. 칭찬과 감탄보다는 비난과 질책을,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열정보다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자기를 평가하려는 아이들, 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의외로 크다.
그런 아이들을 학생들을 이기적인 아이들이라고 한다. 또는 대화가 어려운 아이들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가깝게 지내기 싫다는 말이다.
존재감 뚜렷하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교실에 있는 듯 없는 듯 무색무취의 아이들이 한반에 한둘 이상 있다.
그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구나! 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의외로 놀라울 정도로 내면이 용광로인 아이들이 있다.
교실에서 입을 무겁게 하고 생활을 하다 보니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라 생각했는데 자신을 준비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한발 한발 조용히 준비하는 아이들 말이다.
이런 조용한 아이들에게는 조용한 응원과 어깨 두드림이 대화의 방법이다. 반대로 깃털처럼 가볍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입은 쉬지 않고, 눈과 머리는 항상 다른 학생들의 반응과 이야기를 귀담으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가로채면서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이 있다.
순간적인 판단이 가끔은 논리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배운 것을 반복하는 녹음에 불과할 뿐 말과 행동은 다르다.
이들은 스스로는 상당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학생들에게는 거북스러운 존재감 없는 아이이다.
색깔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어떻게 하면 그들과 공통의 주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동의 가치를 내면화 할 것인가 항상 고민한다.
지식을 전달하고 정해진 수업 시간을 채우는 것은 교사의 역할로 당연하지만, 직업으로서의 교사의 역할수행이 교육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이슈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면 아직은 객관적 가치관형성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편협한 이념으로 다가가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이럴 때 교사인 나나 학생들이 같이 고민해 볼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미래이다.
미래를 말하는 것처럼 희망적인 것은 없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안성맞춤이다.
유명한 명언들을 보면 하나같이 모두 미래와 희망 그리고 행복은 연결고리가 있다.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은 멋진 것이다.
<톨스토이>,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은 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헬렌켈러>, 희망을 갖는데 너무 늦은 때란 없다. 행동은 희망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다.
희망은 인간만이 가진 것이다. 따라서 개인에게 있어 희망의 끝은 곧 죽음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라.<샤를르 드골>
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지는 것이다.<칸트>
하지만 이는 그들의 미래이고 희망이다. 내가 없는 미래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고로 우리 아이들 스스로 고민하지 않는 미래는 의미가 없다. 미래를 생각하게 하고 꿈틀거리게 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그것이 교육이다.
내가 살아갈 미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시점이 다른 어른들의 가치와 사고로 가르치려 하거나, 가치 있다고 주장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내가 살 미래는 그들의 미래와 다른 시점이기 때문이다.
단지 교사와 부모님은 고민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꿈틀거리게 돕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어른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의외로 그 답은 간단하다. 가치와 목적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고 답하게 하면 된다.
내 아이가 매래를 위해 준비하는 것의 목적이 무엇이고 그 가치가 무엇인지 같이 고민해 주고 대화하면 된다.
때론 엉뚱하고 기막힐 때라도 그것의 목적과 가치를 이야기 하다 보면 어른으로서 해주고 싶은 조언을 가르치지 않아도 우리 아이 스스로 찾게 된다.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내가 있는 나의 미래를 찾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어른의 잣대로 지나간 과거의 시간으로 그들의 미래를 설계하려 들지 말라. 목적과 가치가 투여되어 스스로 결정하여 찾은 아이들의 미래는 꺼지지 않는 용광로처럼 끓어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