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마르께스의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백년이라는 시간동안 한 신화적 마을 ‘마콘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이다.
세상 밖으로부터 도저하게 들이닥친 회오리바람 같은 정치적인 부조리의 삶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홀연히 사라질 때까지 온갖 사건을 겪는다. 그 사건 속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얽히고설킨 이야기 속을 헤매고 다니던 독자는 연금술사 주인공이 금을 캐듯이, 그러다가 현실적 삶의 회오리를 겪으며 세상의 전쟁을 겪듯이 ‘고독’을 캐내어 보기로 한다. 그것은 참으로 지난한 삶의 고독을 맛보는 글쓰기를 닮았다. 그 맛은 우리의 봄처럼 화르르 다가왔다가 사라질 뿐이지만.
첫 번째의 고독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레베카의 흙이다. 그녀는 태생도 불분명한 고아, 불면증을 심하게 앓는 영혼의 허공을 가진 인간이다. 호주머니 속에 몇 줌의 흙을 넣고 다니면서 먹지 않으면 안 되는 마콘도 마을 최초의 이방인이다.
두 번째의 고독은 아우렐리아노의 시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마음을 온 집안에 써대는 시로 도배를 한다. 욕실 벽, 자신의 팔, 신비로운 양피지, 모든 시는 사랑의 넘치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세 번째의 고독은 출생의 비밀이다. 집시 여인으로부터 태어나 마콘도 마을의 혈통에 기댈 수 없는 호세 아르카디오는 생모의 냄새를 추적하며 연기와 같은 냄새를 맡는다. 필라르 테르네라와 아르카디오는 아들과 엄마임에도 사랑의 포로가 된 아들이 그물침대로 엄마를 유인한다. 그 위험한 관계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엄마는 또다른 사랑을 가까스로 맺어준다.
또다른 고독, 정욕이다. 아우렐리아노 호세와 아마란타는 너무 일찍 찾아온 청년기의 고독을 어쩌지 못해 위험한 정열에 빠져 바둥거린다. 조카 호세와 고모 아마란타의 타오르는 듯한 애무 그들은 어찌 될 것인가?
그 와중에 혁명과 보수적 정치세력의 내전은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방랑의 방랑을 요구하며 정열의 핏줄을 생산하기에 이른다. 아우렐리아노가 아버지라는 아이들은 무려 열일곱 명이나 그 마을의 전설처럼 마콘도에 스며들어 온다.
고독은 끝나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전쟁은 고독을 참으로 고독하게 한다. “권력에 따라오는 고독 속에서 그는 나아갈 방향을 잃었다.” “점령한 도시들을 지날 때 환호로 맞아주었으나 아마 적에게도 같은 환호를 보낼 것이 틀림없는 민중들에게 진저리를 쳤다.
그는 자기와 똑같은 눈으로 바라보며, 똑같은 목소리로 지껄이고, 자기가 말을 할 때와 똑같은 태도로 허물없이 다가오는, 자기의 아들이라고 자칭하는 많은 젊은이들을 여러 곳에서 만났다. 그는 흩어진 자기의 씨앗이 이곳저곳에서 싹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자 오히려 심한 고독에 빠졌다......”
결국 고독이라는 영혼들의 허위를 만나는 아우렐리아노, 그가 한 말은 “죽음이야말로 가장 좋은 친구다.” 불안과 끝날지도 점점 알 수 없게 된 전쟁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자유? 진보? 민중의 기반?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전쟁이야말로 고독의 실체일지도 모른다. 비참과 세월의 흐름과 아무런 것도 남아있지 않은 고향의 피폐!
백 년 동안 전쟁 속으로 떠난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우르술라는 결국 아들이 총살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사실만이 그녀에게 남게 되었다는 걸 확인한다.
그들은 핏줄과 핏줄이 던져주는 사랑의 그림자를 붙들고 근친과 근친의 육체적 교합을 나누면서 마지막의 신화를 완성한다. 반대로, 그것은 사랑의 해체 고독의 끝을 확인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이란, 끝나면서 끝나는 것인가. 시작도 끝도 없다는 건가. 마콘도의 마지막 사랑은 돼지꼬리 달린 생명, 그러나 그 생명은 세상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 마을의 신화만 남긴 채. 고독이라는 일체의 인간적 몸부림은 그러므로 ‘이야기’ ‘시’ ‘멸망’ ‘사라짐’ 속에서 살아 숨쉬기하고 있다.
“새들에게도 버림받고 먼지와 더위가 심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마콘도였지만 사랑의 고독과 고독한 사랑에 격리된 채 불개미들이 내는 요란스러운 소리로 제대로 잠을 이룰 수조차 없는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타 우르술라만이 행복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그 두 사람의 아기에게 달려나온 돼지꼬리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말살될 수없는 과거가 남겨두고 간 최후의 유물이라고 말해도 좋은 것이다. 과거는 끝없이 자기 말살을 도모하고 내부에서 소모해 가면서 순간순간 가늘어지면서도 결코 끊어져 없어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었다. 마콘도 최후의 연인들이 남아있는 어떤 집, 그 약방엔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
앞으로도 인간들은 고독할수록 그러한 이야기가 들려주는 ‘마콘도’를 찾아가 스스로의 핏줄 이야기에 물음표를 던질 것이다. 나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내 고독을 어디에 풀어놓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