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의 궁극은 탁월함에 대한 갈망에 있는 걸까? ‘탁월함’이란 과연 삶의 최고의 가치일까? 그저 바라는 것과 행하는 것의 간극은 얼마나 되는 걸까.
빙하의 크레바스를 건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험하며 극적인 어떤 행위, 살아있으므로 한 발 내딛을 수 있음, 그건 짐승처럼 과감히 덤비는 것, 마음속에 ‘윤리’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야수’ 한 마리를 키우는 것.
더구나 그것은 치명적인 ‘종속성’을 거부하고 ‘선도력 先導力’을 쟁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진석! 그는 전략적 인간이다.
그의 책,『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는 내내 끈질기게 ‘나는 전략적으로 살았는가? 현재 나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그 어떤 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가?’라고 묻게 했다.
형식적인 질문을 넘어서는 질문, 현실을 냉철히 읽을 줄 아는 질문, 저기로부터 배워온 지식이 아니라 내 스스로 사유하며 가슴 깊을 곳을 후벼 파며 던지는 질문이 철학의 정도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모든 것과 갈등하는 질문, 아직 오지 않는 것을 궁금해 하는 상상력, 이것들이 반역이라면 철학을 한다는 것은 ‘반역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철학은 지성(知性)과 지혜(智慧)가 합쳐진 말이다. 영어로 필로소피(philosophy)인 것이다.
과학적이며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능력, 그 훈련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탁월성이다. 기존의 사고를 이어달리기 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단절시키고 자신의 독창적 사유를 통해 한 세계를 창조적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철학은 ‘경이로움’으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것들을 새로운 호기심으로 들여다볼 때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는 ‘경이로운 Thaumazein--Wonder’ 시선이 발생한다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모든 것들과 결별하고 낯설어지는 실험을 감행하는 지점에서 철학은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장자』의 「천지 天地」편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오묘한 어둠 속에서 사물을 보고, 소리 없는 고요 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오묘한 어둠 속에서 홀로 밝은 빛을 보고, 아무 소리 없는 곳에서 홀로 조화로 운 소리를 듣는다. ”
“시호명명 視乎冥冥, 청호무성 廳乎無聲, 명명지중 冥冥之中,
독견효언 獨見曉焉; 무성지중 無聲之中, 독문화언 獨聞和焉,“
변화란, 현재의 틀인 나의 익숙함에서 아직 오지 않는 세계, 혹은 열리지 않는 세계로 넘어가는 일이다.
문법에 갇히지 않고 고독한 소리를, 빛을 바라볼 줄 아는 인간만이 열어가는 고독한 세계이다.
탁월한 인간은 ‘다음’이나 ‘너머’를 꿈꾼다. 버트런트 러셀의 말을 빌면 그것은 그야말로 전복적이고 혁명적이며, 파괴적이고 가공할 만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 그것이 희미해지는 이유는 교육과정에서의 말살적 제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러셀은 비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참된 나’로 존재할 수 있는가? 그 용기!만이 창의적 인간의 특징이다.
그런 인간은 지적으로 부지런하다. 힘들고 불안한 내면을 들여다보며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실을 향해 돌파하려면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
그건 단순히 알고 넘어서는 게 아니라 ‘인격적 차원에서 관찰, 통찰, 사유’해야 한다.
그러한 인간은 덕德을 통해 발현되는 인간이다. 덕이란 ‘신과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된 자신만의 근본적인 작용 능력’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 덕이 온전해진 상태를 ‘태연자약 泰然自若’이라고 표현한다.
태연자약은 ‘자기가 자기로만 되어 있음’을 뜻한다. 태연이란 아주 크고 넓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태연한 사람은 자약하고 자약한 사람은 태연하다. 그러한 인격체는 경쟁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경쟁의 틀은 이미 고착화된 기존의 틀이므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사람에겐 그런 갈등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경쟁 속에서는 누구도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 ‘자약’하면 이미 존재하는 경쟁의 틀 속으로 들어가려고 급급해하지 않고 자신의 의도에만 집중한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려 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삶에 집중한다.
그의 경쟁 상대는 자기 자신일 뿐! 그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방성으로 새로움을 향해 나아간다.
그것이 ‘전략적 차원’의 진정한 독립과 자유와 창의적 상승 가도이다.
스스로 자유로운 사람은 가족 공동체에서는 자신의 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선 자신의 꿈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먼저 자신이기 때문에! 그러한 성숙도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렇다! 성숙된 개인은 그냥 ‘개인’이 아니다. 성숙의 높이와 깊이는 이미 그 개인을 넘어서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모든 철학가나 예술가가 혁명가고 더 나아가 문명의 깃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격적으로 상당한 성숙에 이른 사람은 혼자가 아니고,
반드시 동조하는 사람이 생긴다.”
“덕불고 德不孤, 필유린 必有隣”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