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폭우 장 진희 하늘이 노했다 땅이 노했다 지구가 무섭다 바다도 강도 계곡도 산도 무섭다 하늘에서 천둥소리 요란하고 개울 속에서도 바윗돌 구르는 천둥소리 끊임없다 개울가 집 개울물 넘칠까봐 개 목줄부터 풀어준다 옷가지 가방에 싸고 노트북 챙겨 좀 높은 곳에 세워둔 차에 실어 놓는다 밤새 잠 못자고 들락날락 개울물 수위를 지켜본다 싸다 싸 목숨 하나 살자고 하늘 땅 못살게 군 댓가 집안을 살펴보니 밭에 내어 호박 참외 배추거름 되어야 할 똥오줌 수세식 변기로 흘려보내고 ...
올해는 계속 내리는 비로 여름 계곡의 싱그럽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네요. 아이 셋 낳고, 10여 년 동안 집안과 텃밭에서만 뱅뱅 맴돌다 보니 언젠가부터 여름이 되면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몸이 너무 지치고 숨쉬기도 힘들 정도여서 아이들 데리고 무작정 화엄사,피아골,쌍계사,참새미골 계곡에 가서 놀다가 해 질 녘 돌아왔지요. 아이들은 물개마냥 세상 행복하게 놀다가 해가 어둑어둑해져도 물에서 나올 줄을 몰라 저랑 매번 실랑이질했답니다.때론 버너,냄비 준비해서 계곡 옆 정자에서 아빠가 끓여주는 라면으로 저녁도 맛나게...
농 무 신 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 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붉은 기운을 이끌고 장엄하게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 작약,데이지,노란 코스모스,낮달맞이,매발톱,방울꽃으로 환한 화단과 황토 한옥을 은은히 비쳐주며 오늘 하루의 삶도 아름답고 감사했노라고 속삭이는 노을. 한 아빠는 집 아래 밀밭으로 익어가는 밀을 베러갑니다. 그리고 초록빛 기운이 감도는 몇 주먹의 밀대를 쓱쓱 베어옵니다. 또 한 아빠는 잔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웁니다. 나뭇가지에 불이 붙어 작게 타오를 즈음 아이들은 너도 나도 밀대를 손에 쥐고 밀이삭을 불에 태웁니다. 밀사리를 아시나요? 사리는‘불살라 먹는...
올해 들어 구례장터에서는 종종 신나는 일이 벌어졌다.설을 앞두고 지리산 엄마들이‘지리산 아이들 사진전’을 열었다. 장터에 나오신 할머니,할아버지,아저씨,아주머니,이모,삼촌,아이들,명절에 고향을 찾아 음식 장만하러 나오신 분들...많은 이들이 이쁜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꽃보다 예쁜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대보름날에는 엄마,아빠,아이들이 어울려 풍물을 치며 장터를 한 바퀴 돌았다.지신밟기도 하고 액맥이 타령도 부르면서 액은 저~~리 물러가고,좋은 일들 가득하시라고 복을 빌어드렸다. 아이들도 졸랑졸랑 따라다니며 상쇠의 넉살...
신록이 피어나는 화창한 계절4월. 겨울 지난 나무에 피어나 눈길 닿는 곳마다 환한 빛으로 가득하고,탄성을 자아내던 어여쁜 꽃들도 져가고 있고,이제는 가지가지마다 참새 혀 같고,뱁새 혀 같은 어린 연두빛 새순들이 돋아나 햇살받아 투명하게 반짝이는4월의 끄트머리. 부부 박새가 알 낳을 둥지를 찾기 위해 자꾸만 우리집 유리창을 두드리다가 이제는 어디엔가 둥지를 지었는지 보이지 않는4월이 가는 길목.화단의 수선화와 할미꽃이 지고,모란과 라일락과 매발톱꽃이 피어나고,작약꽃이 꽃봉오리를 맺히고 있는 시간,농부들이 볍씨를 길러 논에다...
살구꽃나무 아래서 우리 뒷집 할머니 김 용택 시,백 창우 곡 우리 뒷집 할머니 혼자 사는 집 살구꽃이 하얗게 떨어지는 집 우리 뒷집 할머니 혼자 사는 집 은행잎이 노랗게 떨어지는 집 우리 뒷집 할머니 혼자 사는 집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여있는 집 우리 뒷집 할머니 혼자 사는 집 굽은 허리 담 너머로 보이는 집 우리 뒷집 할머니 혼자 살던 집 살구꽃이 하얗게 내리는 빈 집 우리 뒷집 할머니 혼자 살던 집 우리 뒷집 할머니 혼자 살던 집 살구꽃이 피기 시작했다. 우리는 앞마당의 연분...
구상나무에 눈이 가득 내린 어느 날 구상나무에 눈이 가득 내린 어느 날 지리산 아이들과 엄마들은 산오르막길을 걷고 걷는다 때론 내가 가고픈 길이 아니라고 떼쓰며 뻗장부리는 아이가 있어도 엄마들은 걷고 걷는다 그러다가 맘씨좋은 형아가 달래서 한참만에 뽀드득 뽀드득 눈길 밟으며 새하얀 길을 올라온다 나무에 가득 쌓인 나무서리(상고대) 나무,풀이라는 조형물 위에 하늘의 은총이 가득 내리시어 내 눈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설레임 가득하며 담고 담아도 또 담고 싶다 아! 차마 발길 떼는 것이 쉽지 않구나 이 숲...
지난 설을 맞아 구례 오일 대목장에는 어여쁘고도 촌스런 사진들이 걸렸다. 바구니에 봄 나물 소담하게 뜯은 애기 아가씨. 배추밭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배추보다 어여쁜 소녀. 어린이집 차를 기다리다가 가만히 눈감고 민들레 홀씨를 불고 있는 여자 아이. 강가에 유모차 타고 나와 앉아 언니랑 봄날의 섬진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자매의 뒷모습. 형아가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종이 왕관을 쓰고 큰 대바구니 앞에 앉아 완전히 몰두해서 강낭콩을 까는 쪼꼬만 아이의 진지한 모습. 빠진 어금니 드러내며 천왕봉 바위 옆에서 ...
2019년의 마지막 달,한해를 마무리 하는 달이라 그런지 유난히 일이 많았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아 참 감사하다.우선은 교육청에서‘마을교육 공동체’에 관한 포럼이나 방향찾기로 구례 사람들이 머리 맞대고 교육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학부모들 중에서도 이 부분에 관심있는 부모들이 자주 만나서 회의하고 얘기나누기를 여러 번 하였다. 추운 날씨와 직장 일,아이들 돌보는 일,연말로 바쁜 일정 등으로 짬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부모들은 어떻게든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