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저급함 투성이다. 그 저급함 속에 위대함은 빛나고 있다. 모든 가치는 전도된 가치에 의해 평가될 수밖에 없는데, 그 역설을 비켜갈 문장 또한 없다. 헤겔의 정반합이 아니더라도 삶의 이치를 보여줄 논리를, 짧고 단순한 명제로써 그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철학자 또한 드물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철학적 삶에 대한 정의正意를 비추기 위하여 디테일한 은유와 상징을 답보해야 한다. 작가의 펜은 그때마다 평범과 비범 사이를 고독하게 오가며 등장인물들을 탄생시키고, 그들에게 역설적 생명을 부여하기 위한 문체 창조에 고...
1446년 10월 8일, 한글이 태어났다. 한글 탄생에 얽힌 사상적 과학적 미학적 배경은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한다. 오늘날 세계는 한 우물에서 길어오는 물을 먹는 경우처럼 한 마을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넓어야 며칠이면 오고갈 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단 몇 시간도 걸리지 않고 모든 상황을 전달 받을 만큼 가깝고도 먼 그런 삶의 형태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도 세계의 언어들은 삼삼오오 자신들의 영역을 차지하고 살아간다. 그 언어들의 영역이 바로 민족이나 국가나 지역을 이룬다. 그 안에서 서로를 이해...
인문학이란 생선 냄새다. 아침에 한 마리의 생선을 구웠더니 온 집안에 냄새가 가득 찬다. 처음엔 비릿하다가 조금 있으면 고소하다. 더 오래 되면 창을 열고 냄새를 밖으로 내 보낸다. 다른 집 창을 통해 그 냄새는 다른 사람 입맛을 돋우고 생선 가게로 그 집 주부의 발길을 재촉할 것이다. 가을이다. 전어 굽는 냄새 그리워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계절, 오늘은 전어회에 전어구이에 저녁을 고소하게 먹어보고 싶다. 책 읽으면서는 어떤 한 냄새를 맡아볼까? 예전에 읽었던 [세계사편력]이 생각난다. 『세계사편력(Glimpse...
삶의 한가운데에 선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세울 수 있을까. 누구는 행복한 삶을, 누구는 사랑하는 삶을, 누구는 건강한 삶을, 누구는 부자 되는 삶을.....나는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왔을까. 참 지고지순한 물음이다. 적어도 ‘삶의 본질’에 다가서면 우리에게 겉껍데기 아닌 반짝이는 알맹이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고요히 나부끼는 깃발을 내려놓아야 한다. 깃발처럼 나부끼며 우리를 설득하려 했던 삶의 보편적 가치들이 왜 더 이상의 희망이 되지 못 하는 것인가. 왜 우리의 가슴을 이렇게 허전하...
인문학이란 후유증이다. 고통과 환희, 열정과 쓸쓸함, 상처와 희망을 동시에 선물하는 통렬함이 인문학이다. 그 후유증 때문에 인문학은 영원히 우리들의 심리 속에서 심각하거나 경이로운 미래에의 전망을 저울질하게 만든다. 병들었던 모든 사람들은 그 어떤 과정의 치유가 끝났다고 해도 그것으로 아팠던 시간들의 상처를 깨끗이 털어버리지 못 한다. 보이는 외상은 더 이상 깨끗해질 수 없이 나았다고 해도 내면 구석구석에 깃들어버린 심리적 아픔과 내상마저 온전한 회복을 보여주기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그 후유증을 닮은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란 기우제이다.대지가 메말라 지구의 생명들이 목이 타고 마실 물이 없으면 그 어떤 삶도 피폐해진다.죽음의 푸가처럼 처절한 신음들로 세상은 가득찰 것이다. 밭에도 논에도 씨앗을 들일 수 없다.하늘은 높아가지만 너무 높아 손닿을 수 없고,아무리 위대한 하늘의 말씀이라도 땅을 적시지 못 하면 그 어떤 사랑도 불가능하다. 하늘은 땅과 만나야 비로소 한 씨앗을 뿌려 생명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세상이라는 역사는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인간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이 구름으로 젖어들었다.방울방울 물방울들이 밤새...
인문학이란 게딱지다. 온뻘밭을 옆걸음으로 걸어오며 만들어진 견고한 등껍질이다. 그 껍질 속에 숨은 오묘한 언어들의 꽃잎을 스치는 바람결이 인문학의 문장들이다. 그러니까 인문학은 게딱지의 미학이다. 만만치 않은 비린내를 손가락에 범벅하며 먹어야 할 시간의 끈적임이다. 게딱지의 시간이 뭉쳤다 풀어지는 그 아침 점심 저녁 밥상에는 인문학의 바다가 질펀하다. 게딱지는 그러므로 바다의 펜촉이다. 그 바닷물 잉크가 마르지 않는 한 어떤 삶의 결이든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모래밭 책상이 펼쳐져있다. 소금물 잉크가 필요할 때는 언제...
인문학이란 합리에 이르는 길이다. 최초의 인간은 아마 자연적 인간이었을 것이다. 먹고 자고 놀고 싸고, 씹하고.... 자연 속에서 자연을 벗 삼아 인간적인 삶을 영위해가던 인간은 그 자연을 이탈하고 자연의 길 아닌 인간만이 소유한 두뇌적 삶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 길 안에서 무수한 오류와 합리 사이를 오가며 무엇이 가장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고뇌했을 것이다. 오류란 다름아닌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에 의해 저질러지는 수없는 파괴와 전쟁, 살육과 도적질의 연속된 고통의 억압기제였을 테니까. 합리란 ...
인문학은 춤이다. 춤은 시간과 공간의 찰떡 만남이다. 그 순간, 만남의 교집합이 춤이다. 춤의 시간은 완전한 현재태요, 춤의 공간은 빈틈없는 현실의 경험태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춘다고 하자. 그 춤의 시연을 위해서 그들은 정교한 프로그램은 아니더라도 서로의 눈빛과 감정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정교한 언어적 이벤트를 통하여 한 동작 한 동작을 치밀하게 구성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몸과 몸의 각도를 통하여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어떤 표정과 몸짓을 위하여 어떤 마음의 색채로 흘러야 하는지.....
인문학이란 종을 만드는 과정이다. 거칠고 모진 미지의 돌덩이를 제련하여 우아하고 울림이 큰 종을 ‘스스로’ 만드는 과정이 인문학이다. 연금술을 통하여 고대인들은 삶의 제련 과정을 연마하고 터득했다. 연금술이나 점성술은 지구 여러 곳에 편만해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신과의 연관을 통하여 점성술이나 연금술을 자신들의 삶의 변화나 기술의 과정에 접목하여 발전시켰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 사고를 변화시키는 기본적인 형태를 설명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중국에서는 연금술을 단순히 '그 기술'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변화나 변형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