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지혜는 역사의 정체성이다. 역사 속의 케케묵은 사건들은, 그 한꺼풀 비밀을 벗기면 맛볼 수 있는 마술처럼 지혜로워지는 역설이 있다. 사람의 삶이 수십억 년의 두께를 지녔다고 생각하면서 그 역설 속에서 지금도 지혜를 발견하기 위해 한 장 한 장 인문학적이며 역사적인 책자를 들추고 있다면, 그건 책 읽기의 괴로움이 주는 또다른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오늘 그대는 무슨 책의 어떤 구절 앞에서 호흡을 멈추었는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그 과거는 현재의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왜 역사...
나는 나의 신화를 알고 있다. 신화를 안다는 것, 그건 신화를 산다는 것이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신화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신들의 이야기라고 지레 멀리로 떠밀어두고 모른 체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견딘다. 그 완벽함에 전혀 못 미치는 인간의 모습이 바로 자신이라며.....그런가? 신이 따로 있다면 어디에? 우리는 읽었다 신의 소재를 밝히는 대서사시 호머의 일리아스를, 알고 싶지 않은가? 나로서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신화를 알고 나서 신화를 살게 되었을 때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이 흥미...
“태양빛이 따가울 때면 이보다 나은 피난처는 없어. 이 나무들 모두를 나는 사십 년 전에 직접 심었고 그것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을 낙으로 삼아왔었지......” 괴테는 이러한 삶의 여유를 실제 환경의 리얼리티를 토대로 적용해서 살아가면서도 대가답게 창작을 왕성하게 하는 충실한 리얼리스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너무나 넓고 풍부하며 인생은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시를 쓸 계기가 모자라는 일은 결코 없어. 하지만 모든 시는 어떤 계기에서 쓰여야 하네. 말하자면 시를 쓰는 동기와 소재가 현실로부터 나와야 한...
모든 삶은 만남에서 비롯된다. 우주 만물은 태생이 단독적이지 못 하다. 생물학적으로 수컷과 암컷이 만나야 또 다른 생명이 탄생하듯이, 모든 역사는 그 시초가 만남이다. 거시적으로 생명체와 무생물을 나누지 않아도 모든 사물은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사물은 사물을 만나야 사물다워진다.’ ‘인간은 인간을 만나야 인간다워진다.’ 그 만남이라는 사태가 바로 인문학의 본질이다. 문자와 인간의 만남은 그 중 가장 필연적이며 인문학을 이루는 근간이다. 인간 정신은 언어의 소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을 장식...
사막엔 꽃이 있을까? 궁금했다. 사막은 모래의 땅이다. 꽃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사막 바로 곁에, 물이 흐르고 초원이 푸르고 말이 걸어다니고, 꽃이 끝없이 피어있었다. 한국에서 본 각시붓꽃처럼 푸르른 빛의 보랏빛 꽃이 사막처럼 길게 끝없이 길게, 꼭 사막을 감싸주려는 듯 피어 황혼의 그림자를 길게 끌며 여유롭게 풀을 뜯는 말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건 놀라고자 갔던 고비의 한 풍경이었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처음 간 곳 같지 않게, 가슴 한켠을 후비고 솟아나온 오랜 벗의 노래 소리 같은 은은한 저녁 한 때의 시간에 대한 ...
붉고 노랗고 핑크빛이며 심지어는 파란색까지, 장미야말로 참으로 사랑받는 꽃이며 화려함의 대명사다. 사랑과 행복을 선물하고자 하는 연인들의 꽃바구니를 채우며 장미를 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새빨간, 가장 뜨거운, 가장 열정적인 말 한가운데에 ‘장미’를 놓아도 손색은 없으리라. 그 환한 꽃의 뒷면엔 또한 짙은 그림자가 있다. 장미는 그림자이다. 행복을 그리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가슴처럼, 어딘가로 사라져버릴 것처럼 두려운 삶의 그림자, 행복. 그대는 지금 행복한가? 그대는 고독한가? 어느 시점, 자신의 깊은 ...
바라보는 것, 혼자 또 함께걷는 것, 구불구불 그렇게 느리게사는 것, 어둑어둑 또 빛나게사막이라도동굴이라도차마고도(茶馬古道)의 소금길이라도 그대만의 길이 슬프냐? 한 뼘만큼의 허공을 소유하고 딱 반 쪼가리의 도자기를 굽기 위해 삼천 도 불가마에 온생을 거는 마침내 닿은 천 길 낭떠러지 한 발자국 더 와락 솟아 날아갈 날개가 있다구? 여기, 그 하나의 길! 백 개의 길이 화려하다한들 천 개의 길로 바벨탑을 쌓았다한들 그대의 뻘밭길, 그 오지의 하루보다 더 좋으랴? 길은 길일 뿐 적막허랑낭창 걸어가...
논어 위령공 23장의 말로 이 글을 시작할까 합니다. “기소불욕 물시어인 (己所不欲 勿施於人) : 누구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마음으로부터의 겸양과 정성을 다하고(忠 충), 자신이 원치 않은 일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도 원하지 않아야 한다(恕 서)는 공자의 평생 좌우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은 아마 미투(Me Too)운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의 사회국가적 차원에서 연루된 그릇된 의식과 그릇된 행동이 결집된 그릇된 문화...
‘어머니’는 어떤 존재일까. 나를 낳아주고 나를 바라봐주며 나의 몽상을 채워주고, 삶의 모든 역설과 동경과 살과 피를 물려주고 사라져버린 존재, 골드문트에게 ‘어머니’는 그야말로 우주로부터 출현한 모든 생명들의 근원이며 인간 삶의 비참을 완성시키는 한 빛의 세계이다. 그 빛은 태양빛처럼 시시때때로 내 몸을 따스함으로 감싸주었으나, 한없는 그리움으로 멀어진다. “그를 향기롭게 감싸면서 불가사의한 눈길로 그를 지켜보고 있으며, 마치 넓은 바다나 낙원처럼 저 깊은 곳에서 속삭이고” 있는. “어머니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모든 것을 갖고...
시는 삶의 지독한 모순과 아픔을 위하여 존재해왔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아프고 언제나 부조리한 건 아니지만 그와 반대로 합리이며 이성적이고 아름다우며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시의 길을 찾아 하얗게 밤을 샐 일은 없을 것이다.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삶의 어떤 비참이, 절망이, 아픔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그 물음에 답해야 했을 때, 시는 물음의 다리를 건너는 도구가 되어주었다. 얼마 전에 몽골의 고비에 갔었다. 오래 전부터 ‘사막’이란 언어가 주는 끌림 때문에 소박한 맘으로 언젠가는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