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요즘의 화두는 단연 일본과의 무역마찰이 아닐까 싶다. 일본의 침략과 전쟁,강제와 인권 유린 등으로 우리 민족은 오랜 시간 동안 고통 당해왔다. 그런 와중에6.25를 겪고 남북이 분단되어 작금에 이르기까지 혈연은 단절되고,그 질곡의 역사를 아직 바른 관점과 바른 위치에 되돌려 놓지 못 한 채 고통 받고 있다. 그 고통의 시작과 과정 속에서 일본은 진실로 사과하지 않았다. 물론 그 국민의 다수가 과거 역사의 오류와 문제점을 시인하고 개인적으로 피해를 입은 한국 국민에게 사과했으며 일본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
致中和치중화,天地位焉천지위언,萬物育焉만물육언.” “중中과 화和를 지극한 경지에까지 밀고 나가면,천天과 지地가 바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고,그 사이에 있는 만물萬物이 잘 자라나게 된다.” -중용1-5/『중용한글역주』/김용옥/통나무/ 세상을 바로 보는 것이 인문학이다. 그 안에 위치한 인간의 삶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이 하늘과 땅 사이에 위치한 생명체이며 그 근원의 주어짐과 삶의 방식은 치우침 없는 중中과 화和의 세계에 있음을 직시하라는 가르침이 중용의 핵심 사상이다. ...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그건 단연‘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관계나 국가적 질서,그 안에서 개인의 삶이 유지 발전된다고 할 때 교육은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건 인간의 태어남과 자람의 과정을 지켜볼 때 명확히 짐작할 수 있다. 혼자 먹이를 발견한다거나 홀로 육체적 성장을 이룰 수 없는 어린 아이 시절부터 인간은 혼자 정신을 발아시킨다거나 홀로 정신적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 인류의 스승이라고 할 많은 성현들은 교육의 문제를 통해 스스로의 인문학적 경지를 키워올리면서 화두로 삼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
인문학이란, 삶의 평가를 위한 하루하루의 지식과 지혜의 축적 과정이다. 평가만큼 어려운 게 없다. 더구나 어떤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분히 주관적이어서 공정한 평정을 담보하려면, 오랜 정신의 평안과 가치관의 균형점, 통합적이며 합리적 사유의 질서를 내면에 축적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사랑과 미움, 상처와 애증의 삶을 살게 되는 게 삶이다. 더욱 국가의 폭력이랄지 세계 속의 부조리한 전쟁 등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 전방위적인 경험적 다채로움, 그 경이로운 차이의 미학이 삶의 고갱이라고 생각한다.우리 스스로가 ...
우리는 만났다 한 잔의 실재를 놓고 우리의 그동안은 왜 허구처럼 느껴지는 걸까한 번도 만나지 못 했던 건 아니지만그가 택한 시간들이내 삶의 중심, 껍질을 빠져나갔던 것처럼, 1910년 그 날 3월 1일!그로부터 864,000시간이 흘렀다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왔는가우리는 그 부끄러운 잔재 속에서 행복했고 눈물겨웠고빈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밥을 먹고어디에서 어둠을 피했으며빛날 수 없는 양심의 결을 내팽개친 시간들 속에서얼마나 열렬히 거짓을 외쳤는가! 우리는 자유와 부조리를 양어깨에 멘 짝꿍이었다달리기를 ...
인문학은 행위를 위한 언어적 보상이며 선물이다. 현자들의 말은, 말의 말이 아니다. 그 말의 씨앗은 바로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의 활동을 증가시키거나 직접 활기를 불어놓지도 않으면서 가르치려고만 드는 모든 것을 나는 싫어한다.” 괴테의 말을 인용하면서 니체는 말한다. 역사의 가치와 무가치에 관한 고찰이 필요한 이유는 ‘활기를 주지 않는 교훈, 활동을 잠재우는 지식, 또 값나가는 인식의 과잉과 사치인 역사’가 우리에게 넘치는 것(삶의 껍데기)으로서 어떻게 잘못 기능하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인문학과 그 행위와의 만...
한 존재의 탄생은 그야말로 고독을 위한 첫 발자국이다. 아무도 그를 살아가게 돕지 못 한다. 그러나 정반대로 입고, 먹고, 싸고, 자고, 생각하고자 할 때 존재는 혼자 또한 그 일을 할 수 없다. 무엇인가. 혼자 아닌 삶이 진정한 삶인가, 혼자인 삶이 더 진정한 삶인가. 삶의 정체를 위하여 일생을 묻고 대답하는 게 인문학이다. 니체는 그 삶의 전체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비극’이라는 예술이 탄생했다고 정의했다. 그는 명저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신화인 디오니소스의 시종인 현자 실레노스의 말을 빌어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
남편을 낳아준 시어머님 제삿날, 그녀의 손주가 절을 한다 그 절이 말을 낳는다우리가 세상에 와 배를 먹을 수 있는 건할머니가 배 아파서 낳아준 오늘 때문이다그날, 해가 달을 낳았다달이 바다를 낳고바다는 늬 형을 낳고엄마는 늬들이 첨벙거리며 놀던 계곡을 낳았다피라미 떼 가재 떼 쉬리 떼를 낳은 계곡은수천 밤을 지새우며 인간들의 번뇌를 빨아들이는 연꽃을 낳았다연꽃은 가을을 낳고, 가을은 봄을 낳고봄은 꽃길을 낳았다꽃길이 낳은 저 웃음들웃음이 울음을 낳고비통의 겨울은 매화를 낳았다매화 한 그루의 향기는 재두루미를 낳고,재두루미는 늬...
명작 읽기는 위험하다. 모든 명작들은 최소한의 오해를 뒤집어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의 독자들은 그 오해의 비평적 관점을 자신들의 진정한 느낌보다도 훨씬 신뢰하면서 명작을 접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명작을 접하는 행위는 들려오는 소문을 개인적 철학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면서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인내와 자부심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항간으로부터 들려왔던 보편적 진실보다 더 특별한 매력이 발견되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읽다보면 스스로 더 만족스러운 문학적 감동에 빠질 수 있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을 읽을 ...
‘하루’는 그들에게,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이 소설은 많이 러시아적이다. 러시아 아니면 결코 기록할 수 없는 배경이기도 하고, 러시아 작가가 아니면 결코 체험하기 어려운 시베리아의 춥고 배고픈 수용소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솔제니친이 그랬고,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랬고, 그들은 하나같이 수용소에서 오랫동안 살았으며 파시스트들의 정치적 억압과 함께 사상과 몸을 감금당한 후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그들의 수용소는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혹한의 겨울, 영하 삼사십 도의 추위, 그것도 멀건 ‘양배추 죽’이 양반일 정도로, 건...